'무기계약직≠사회적 신분' 결론냈지만… 대법원 판결에 남겨진 의문

입력 2023-10-03 17:51  



차별은 최근 노동분야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이슈 중 하나다. 종래 차별의 주된 전장이 정규직과 기간제 근로자 및 파견 근로자간의 문제였다면, 최근에는 ‘무기계약직’과 ‘정규직’간의 차별 내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확대와 같은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 특히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차별의 중심에는 ‘무기계약직’이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있다. 이는 무기계약직의 경우, 기간제·파견 근로자와 달리 별도로 차별금지를 명한 개별 법률이 없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차별금지의 근거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개인적으로는 무기계약직과 같은 고용형태를 사회적 신분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용형태는 ‘계약(contract)’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근로자는 선택과 이탈의 자유를 갖는다. 따라서 이를 ‘계속성·고정성’, ‘선택 불가능성’ 내지 ‘인격적 표지성’을 갖는 ‘신분(status)’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치다. 근로기준법 제6조에서 사회적 신분과 함께 언급된 성별, 국적, 신앙이 모두 ‘계약’과는 거리가 먼 개념들이라는 점만 보더라도 그렇다. 나아가 기간제법이나 파견법과 달리 근로기준법 제6조는 차별행위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규정하고 있는바, 입법의 균형성이나 비범죄화 요청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사회적 신분을 넓게 보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한편, 그간 하급심 판결들을 보면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근로자 사이의 차별을 사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로 인정한 사례도 존재하지만(서울남부지법 2016. 6. 10. 선고 2014가합3505판결 등),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판결례가 상대적으로 다수였다(서울중앙지법 2023. 2. 9. 선고 2020가합210864 판결, 2023. 5. 11. 선고 2020가합537058 판결 등). 이런 상황에서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무기계약직(공무직)은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6다255941 전원합의체 판결. 이하 ‘대상판결’).

위 사건 원고들은 공무직 국도관리원들로서 국토교통부 소속 각 지방국토관리청장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무기계약직)을 체결하고, 도로 유지·보수업무 또는 과적차량 단속 등 업무를 했다. 피고(대한민국)는 운전직·과적단속직 공무원들에게는 정근수당, 성과상여금, 가족수당 등을 지급했으나, 무기계약직인 원고들에 대해서는 이를 지급하지 않았다. 원고들은 비교대상 근로자인 운전직·과적단속직 공무원들과 자신들을 달리 처우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제6조 위반이라고 주장하였다. 제1심과 항소심은 무기계약직이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에는 해당한다고 보았다. 다만, 이들과 운전직·과적단속직 공무원들이 동일한 비교집단에 속하지 않고, 차별적 처우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봐 청구를 기각했다.

그런데 대상판결(다수의견)은 ①공무원은 일반 근로자에 비해 무거운 책임과 윤리성을 요구 받는 지위의 특수성이 인정되는 점 ②공무원의 보수 등 근무조건은 예산과 법령에 따라 정해지고 공무원의 노동3권 행사 역시 법률로 제한되므로 공무원은 근무조건의 결정방식에 있어서도 특수성이 인정되는 점 ③공무원의 보수는 근로의 대가로서의 성격 외에도 안정적인 직업공무원 제도의 유지를 위한 정책적 목적과 관련성이 있는 점 ④공무원의 업무는 변경 가능성이 크고 공무원의 보수체계는 기본적으로 담당업무가 아닌 공무원의 종류, 계급, 직급, 호봉 등에 따라 결정되는 특성이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무기계약직과 같은 개별 근로계약에 따른 고용상 지위는 ‘공무원과의 관계에서’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이 아니며, 무기계약직과 공무원은 동일한 근로자 집단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워 비교집단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보았다.

일단 대상판결은 무기계약직 근로자가 정규직(공무원)을 비교대상자로 하여 근로기준법 제6조에 따른 차별을 다툰 사안에서, ‘무기계약직의 사회적 신분 해당 여부’에 관해 명시적으로 판단한 첫 대법원 판결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판결은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들을 남기고 있다. 먼저, 기존 판례들은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공통적으로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 그 자체가 ‘계속성·고정성’ 내지 ‘선택 불가성’과 ‘사회적 평가 수반’ 요소를 충족하는 것인지의 관점에서 판단하여 왔다. 그런데 대상판결(다수의견)은 공무원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기존의 논의에 입각하여 명확하게 판단하지는 않았다.

또한 대법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무기계약직이 사회적 신분이 아닌 것은 ‘공무원에 대한 관계에서’만 한정된 판단이라고 하면서, 무기계약직의 사회적 신분 해당성을 일반적으로 부정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즉, 대법원은 무기계약직이라는 고용형태가 사회적 신분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은 미룬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무기계약직이 ‘공무원에 대한 관계에서’ 사회적 신분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이는 대법원이 ‘사회적 신분’을 비교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기존 하급심 판례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생소한 판지인데, 향후 근로기준법 제6조 위반이 문제되는 사건에서 법원이 이같은 법리를 계속 적용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대법원(다수의견)이 무기계약직의 사회적 신분 여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한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관련 문제를 좀 더 명료하게 정리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사회적 신분 개념이나 비교대상성을 상대적인 개념인 것처럼 기술한 것은 기존의 해석론과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 있으며, 차별판단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문제도 있다. 이왕 전원합의체의 논의를 거친 마당에 학계 및 실무계에서 다년간 관심사가 되어 온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일반적이면서도 기존 논의와 부합되는 판시를 거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향후 대법원은 사기업·민간영역에서의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근로자 간의 차별 사안에서 미뤄진 판단을 하게 될 것인바, 관련 논의를 충분히 고려한 합당한 결론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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